Laboratory

연구소 소식

Notice & News

소식

"문명 충돌의 시대, 기업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장재혁 前 삼성전자 DS부문 중국총괄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임준서연구소장 댓글 조회 작성일 25-12-02 15:21

본문



f7490a83e5f54250b138932decb76a27_1764656298_7372.JPG
 

2025년 11월 28일 연세대학교 AI반도체혁신연구소에서 장재혁 대표(전 삼성전자 부사장)가 던진 화두는 단순한 무역분쟁을 넘어선 문명사적 관점에서의 미중 갈등 해석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은 과거의 패권 다툼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강의 서두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기존에는 비슷한 문명권 내에서 누가 더 센가를 겨루는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문명이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입니다."


패권의 본질: "하나의 하늘 아래 두 태양은 없다"


"패권의 핵심은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만약 공유하려면 무대를 따로 만들어야 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의 질서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현재 상황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전후 70여 년간 구축한 브레튼우즈 체제와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 기반의 패권을, 중국은 5천년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자신만의 질서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독특한 시스템: "천혜의 요새에서 키운 문명"


"중국은 지리적으로 동쪽은 바다, 서쪽은 파미르 고원과 텐산산맥, 남쪽은 히말라야산맥, 북쪽은 고비사막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입니다. 그 안에서 황하강과 양쯔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에서 55개 민족을 '한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통합해온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특히 중화사상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중국의 패권 개념은 서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서구는 힘과 효율의 논리라면, 중국은 도덕과 포용을 통해 주변국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시스템이었죠. 책봉-조공 관계에서 조공보다 하사품이 더 많았다는 기록이 이를 보여줍니다."



시진핑의 '중국몽':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로


덩샤오핑 시대의 "흑묘백묘론"과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전략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편승했던 중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략을 바꿨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깨달았습니다. '세계화에 편승만 해서는 언제든 당할 수 있구나'라고요. 시진핑의 중국몽은 바로 이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중국몽은 단순한 경제 성장이 아닌 문명적 자립을 의미한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떨쳐 일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로 전환된 것이 핵심입니다."



대만에서 발견한 생존의 지혜: "쉐이비엔의 철학"


대만 경험을 통해 중화 문명의 실용주의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대만 사람들의 '쉐이비엔(隨便)' 정신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것은 겉으로는 '아무거나 상관없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효율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대만의 인프라 투자가 늦었던 이유도 "국민당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륙 광복하고 다시 갈 건데 여기에 뭘 그렇게 투자해?'라는 생각에서, '쉐이비엔'이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유연한 기업문화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의 '관시(關係)' 문화에 주목했다. "관계가 맺어지면 그것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평생의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사회적 인프라가 됩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퇴사하는 직원도 '너 어디 가서 뭘 배울 거야?'라며 응원해준다. 결국 그 사람도 내 네트워크의 일부니까 말이다."



미중 갈등의 현실: 3단계 봉쇄 vs 국가 주도 분과 시스템


미국의 체계적 대응을 분석했다. "1단계는 상품 관세, 2단계는 엔티티리스트와 외국직접생산규칙을 통한 기술 제재, 3단계는 자본과 금융 통제입니다. 특히 '외국직접생산규칙'은 해외에서 생산되더라도 미국 기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중국에 못 팔게 하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중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각 기술 분야별 '분과'를 만들어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 분과에 들어가기만 해도 회사가 잘됐는데, 이제는 결과를 못 내면 책임도 같이 집니다. 그 정도로 절박하게 뛰고 있어요."



TSMC 딜레마: "자기 집에 불을 지를 순 없다"


현재 상황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TSMC를 들 수 있다. TSMC 난징 공장 앞에는 인민해방군이 서있다. 그런데 그 공장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격이다.


"지금은 양측 모두 시간벌기를 하고 있습니다. 각자 독립적인 공급망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요. 문제는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는 거죠."



중간국가와 기업의 생존 전략


미중 패권 갈등 속 중간국가의 포지션에 대한 질문에 현재 반도체 업계의 생생한 고민을 전했다. "지금 같이 사업하는 분들과 만나면 정말 심각합니다. 중국 공장을 철수해야 할까요? 미국에 새 공장을 지어야 할까요? 투자비는 어떻게 회수하죠?" 대만 친구들은 '계속 여기서 사업해도 될까요? 밖으로 나가면 정부가 가만 안 둘 텐데, 그렇다고 여기 있으면 안전할까요?'라며 매일 고민하고 있다. 이런 질문들이 회사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 같은 중간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장 대표의 답은 명확했다. "모호한 중립보다는 명확한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그레이존에 있다가는 양쪽에서 다 얻어맞아요."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기술주권 확보 - 작은 것이라도 내가 독점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세요. 둘째, 실리 중심 판단 - 미국도 중국도 자국 우선주의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셋째, 명확한 색깔 - 그레이존에 있다가는 양쪽에서 다 얻어맞습니다."



영향권 분할이 유일한 해법


"패권은 본질적으로 공유할 수 없습니다. 한 집에 아버지가 둘일 수는 없듯이, 그렇다고 핵 시대에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요. 결국 영향권을 나누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구 문명과 중화 문명이 5천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마주한 상황이에요. 쉽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여러분도 이런 변화에 맞춰 진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일할 사람은 기업 전략을, 국가를 위해 일할 사람은 국가 전략을 짜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연세대학교 AI반도체혁신연구소(연구소장 임준서 교수)가 주최한 이번 특강은 미중 갈등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며, 격변하는 시대에 개인과 기업이 가져야 할 전략적 사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